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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앞에서 멈칫했던 이유 (클림트, 피카소, 게르니카)

by diary2026-1 2026. 2. 26.

클림트

대학 기숙사 벽에 붙어 있던 그 그림들, 혹시 기억나시나요? 클림트의 '키스', 뭉크의 '절규', 그리고 피카소의 무언가. 저도 그랬습니다. 그때는 그냥 '유명한 그림'이라서 붙여놨던 건데, 막상 유럽 미술관에서 실물을 마주했을 때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게 지금까지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좀 더 공부하고 갔더라면 그 그림들이 왜 그 자리에 걸려 있는지,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클림트가 그린 건 사랑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클림트의 '키스'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예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금박이 화려하고, 포옹하는 두 사람이 낭만적으로 보였거든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절벽 끝이라는 사실, 여자의 발가락이 허공에 걸쳐 있다는 디테일을 나중에 알고 나서야 '아, 이게 그냥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클림트는 19세기 말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화가인데, 당시 비엔나는 사회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전통적인 윤리관이 흔들리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았죠. 클림트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여성의 몸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관능적이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해 보입니다. '유디트'라는 작품을 보면 더 확실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여전사를 그린 건데, 그 얼굴 표정이 묘하게 황홀해 보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걸 보고 "퇴폐적"이라고 비난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유럽 여행 갔을 때 클림트 작품을 몇 점 봤는데, 그때는 그냥 '금박이 화려하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지금 다시 가면 절벽 끝의 키스, 여자의 발 위치, 그림 속 불안한 균형감 같은 걸 찾아볼 텐데 말이죠. 참고로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는 2006년에 약 1700억 원에 팔렸습니다.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창업자가 샀다고 하는데, 관능미를 다루는 브랜드와 클림트의 조합이 묘하게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피카소는 왜 얼굴을 비틀어놓았을까

피카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저는 피카소 하면 '큐비즘'만 떠올렸는데, 사실 그 이전 시절 그림들을 보면 놀랍습니다. 15살 때 이미 완벽한 데생 실력을 갖추고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이 왜 나중에 사람 얼굴을 해체하고 비틀어놓은 걸까요? 저는 그게 궁금했습니다.

피카소에게는 '청색 시대'라는 게 있습니다. 파리로 건너간 직후, 친한 친구가 자살하면서 극심한 우울에 빠졌던 시기죠. 그때 그린 그림들은 전부 푸른색 톤입니다. 쓸쓸하고, 춥고, 고독한 느낌이 화면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뒤 분위기가 바뀝니다. 색감이 따뜻해지고, 에너지가 생기더니 결국 1907년에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작품을 내놓습니다.

이 그림이 미술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기존 방식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다섯 명의 여인이 정면을 응시하는데, 얼굴이 비틀려 있고 몸의 비율도 이상합니다. 아프리카 조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당시 유럽에서 아프리카는 '미개한 문명'으로 취급받았습니다. 피카소는 그런 편견을 깨고, 오히려 아프리카 조형미를 서양 미술에 끌어들인 겁니다. 같은 시기에 클림트도 활동했지만, 미래를 향한 실험 정신 면에서는 피카소 쪽에 무게가 실립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예술가의 세계란 정말 일반인과 다르다는 걸 피카소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그는 평생 새로운 방식을 찾아 헤맸고,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아방가르드 작가라는 게 결국 총알 맞을 각오를 하고 앞장서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재밌는 건, 한국에서 1969년에 피카소가 금지된 작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름만 거론해도 법에 걸렸고, '피카소 물감'을 만들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당시엔 그만큼 피카소가 위험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겠죠.

게르니카 앞에서 느낀 전쟁의 공포

피카소가 큐비즘으로만 끝났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정말 대단한 건, 추상적인 형태로 역사의 비극을 담아냈다는 점입니다. '게르니카'라는 작품이 그렇습니다. 가로 8미터, 세로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인데, 스페인 내전 당시 게르니카라는 마을이 무차별 폭격당한 사건을 다룹니다. 민간인 수백 명이 죽었고, 마을은 초토화됐습니다.

그림을 보면 온통 흑백입니다. 왜곡된 형태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엄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말이 비명을 지르고, 시체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색이 없는데도 전쟁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오히려 흑백이라서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200배 더 강렬하게 우리에게 던졌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실물로 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압도적이었습니다. 미술이 현실을 떠나 추상으로 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 건데, 그냥 돌아온 게 아니라 더 무섭게, 더 진실에 가깝게 돌아왔습니다. 이게 현대 미술이 이룬 성과라고 봅니다. 아름다움만 그리는 게 아니라, 진실을 직시하고 그걸 우리에게 던지는 역할을 하는 거죠.

미술 앞에서 저는 늘 작아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술가와 일반인의 차이는 확실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부유한 작가와 가난한 작가의 차이도 분명하지만, 결국 이겨내는 건 절실함과 사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유럽에 갈 기회가 온다면, 이번엔 좀 더 많이 공부하고 가려고 합니다. 그림 앞에서 그냥 '예쁘다'로 끝내지 않고,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말이죠.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MZydkheN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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