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미술을 오랫동안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미술학원에 다닐 때도 '잘 그리는 방법'만 찾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술사를 들여다보니 그림은 재능보다 '관찰력과 염원'에서 시작했더군요. 원시인들이 동굴 벽에 사냥감을 그린 이유도, 이집트인이 무덤 안에 그림을 남긴 이유도 결국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습니다. 서양 미술사는 이런 인간의 욕망과 시대의 변화가 만들어낸 기록이었습니다.
원시미술, 주술적 바람에서 시작된 그림
원시미술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지금도 하는 행동들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수험생 엄마가 엿을 붙이고, 등산객이 돌탑을 쌓고, 아이가 크리스마스 양말을 걸어두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두 바람을 담아 어떤 행위를 하는 겁니다.
라스코 동굴 벽화를 보면 사냥감이 될 동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들은 깊은 동굴 안쪽,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불편한 곳에 있습니다. 과시하려고 그린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원시인들은 진심으로 사냥의 성공을 기도하며 그림을 그렸던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갖고 싶은 것, 원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렸던 것처럼 원시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림은 염원을 담는 도구였습니다. 청동 조각이나 나무 조각을 보면 지금 봐도 감탄할 만큼 정교합니다. 재능이 아니라 간절함이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이집트미술, 영생을 위한 완전한 기록
이집트에서는 조각가를 'He who Keep Alive', 즉 '계속 살아 있도록 하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 미술은 왕의 영생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원시미술이 살아 있는 자의 바람이었다면, 이집트 미술은 죽은 자의 영생을 위한 기록이었습니다.
이집트 그림에는 강력한 법칙이 있었습니다. 머리는 측면, 눈은 정면, 상반신은 정면이되 배꼽은 측면, 양쪽 팔다리는 모두 보이도록 측면으로 그려야 했습니다. 중요한 사람은 크게, 덜 중요한 사람은 작게 그렸습니다. 하늘의 신은 매, 장례의 신은 자칼 형상이어야 했습니다.
네바문의 정원이라는 그림을 보면 나무는 측면, 연못은 정면, 물고기는 다시 측면입니다. 우리 눈에는 이상하지만 이집트인들은 각 대상이 가장 명확하게 보이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완전함을 기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노보 묘실 벽화에는 큰 인물 주변에 상형문자가 가득합니다. 왼쪽에는 노보의 명예와 지위, 오른쪽에는 배에서 노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재물 바치는 날짜와 기도문이 적혀 있습니다. 통치자가 죽으면 미라와 함께 하인들까지 묻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림과 조각상이 생기면서 실제 사람을 묻지 않아도 되었으니, 하인들에게는 생명을 구한 셈이었습니다.
르네상스, 과학으로 재현한 이상
중세 천 년 동안 미술은 쇠퇴했습니다. 기독교가 우상숭배를 금지하면서 조각은 사라지고, 회화만 성경을 설명하는 도구로 허용되었습니다. 사실성은 금기였고, 모자이크와 빛, 신비로움만 추구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전했던 기술은 모두 잊혔습니다.
르네상스는 중세의 억압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으로 돌아온 시기였습니다. 세 가지 위대한 발명이 있었습니다. 마사초의 원근법,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해부학, 얀반에이크의 유화입니다.
마사초가 그린 '성삼위일체'는 벽을 뚫어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실제로 벽을 판 줄 알았습니다. 원근법이 처음 그림에 적용된 순간이었습니다.
다빈치는 평생 30구를 해부했지만 모나리자처럼 윤곽을 흐리게 그리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절제의 다빈치'였습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더 많은 해부 경험을 바탕으로 근육과 선을 뚜렷하게 표현했습니다. '과시의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죽기 전 자신의 해부 자료를 모두 태워버려서 지금은 다빈치 자료만 많이 남았습니다.
얀반에이크의 유화는 잘 마르지 않고 불투명한 성질을 가졌습니다.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보면 볼록 거울 속 두 사람의 뒷모습, 강아지 털 하나하나가 살아 있습니다. 유화는 후대 화가들의 주요 재료가 되었습니다.
르네상스는 눈으로 본 것을 재현하기 위해 예술에 과학을 접목한 시기였습니다. 고전 미술을 계승하되, 관찰이 아닌 이론과 연구로 재현했습니다.
저는 미술을 배우면서 관찰력과 통찰력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미술사를 보니 그보다 먼저 '왜 그리는가'가 중요했습니다. 원시인의 간절한 바람, 이집트인의 영생 기록, 르네상스 화가들의 과학적 재현 의지. 미술은 시대의 필요와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처한 환경과 시대가 곧 나의 역사가 됩니다. 미술관에 가기 전, 그 시대와 화가의 사정을 먼저 알면 그림이 훨씬 친근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