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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예술 (흑사병, 르네상스, 스페인독감)

by diary2026-1 2026. 2. 26.

독감걸린뭉크

솔직히 저는 팬데믹이 예술에 미친 영향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단순히 '불편한 시기'로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4세기 흑사병이 르네상스라는 문화적 대폭발을 촉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인류 역사에서 팬데믹이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의 전환점이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던 14세기, 그리고 5천만 명이 목숨을 잃은 1918년 스페인독감 시기에도 예술가들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 더욱 치열하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했습니다.

흑사병이 만든 예술 시장의 변화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흑사병(페스트)은 당시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였던 피렌체를 초토화시켰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눈만 마주쳐도 전염되고 감염 후 3~4일 내 사망하는 치사율을 보였는데, 이는 현대 역학 연구에서도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의 높은 감염력으로 입증된 바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여기서 페스트균이란 벼룩을 매개로 전파되는 세균으로, 감염 시 림프절이 검게 변하며 괴사하는 증상을 일으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 시기 유서 작성 건수가 폭증했다는 점입니다. 역사학자 사무엘 콘 주니어가 수천 장의 유언장을 분석한 결과, 흑사병 이전 연간 823건이었던 유서가 이후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유서 내용의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소액을 여러 곳에 분산 기부하던 방식에서, 흑사병 이후에는 한두 곳에 큰 금액을 집중 기부하는 패턴으로 바뀌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요청 건수도 3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유한 상인들은 성당 내 예배당(cappella)을 분양받아 가문의 제단화를 주문했습니다. 여기서 제단화란 예배당 제단 위에 설치하는 종교화로, 주문자의 영혼 구원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화가 한 명이 제단화 하나를 그리는 데 받은 비용이 50플로린에서 100플로린으로 급등했는데, 플로린은 피렌체의 금화 단위로 현재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약 100만 원에 해당합니다. 즉, 한 작품에 5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는 금액이 오갔던 것입니다.

제가 더 놀란 건 그림 가격이 이후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예술이 부유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화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노동자와 농부 같은 평민들도 작은 그림을 주문하며 자신의 존재를 기록하려 했습니다. 팬데믹이 예술 시장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은 겁니다.

르네상스를 촉발한 죽음의 공포

흑사병 직후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이전 시대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1354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스트로치 제단화가 대표적입니다. 이 작품은 완벽한 좌우 대칭 구도에 경직된 표정, 평면적 인물 배치를 보여줍니다. 50년 전에 그려진 작품들이 오히려 더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웠던 것과 대조됩니다. 화가들이 기술적으로 퇴보한 걸까요? 아닙니다. 이는 신의 분노와 심판에 대한 공포가 예술 표현을 다시 엄격하고 상징적인 방향으로 되돌린 결과입니다.

제 생각엔 이 시기 화가들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한 이유였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자 요한의 얼굴이 똑같이 그려진 것을 보면, 급하게 복붙하듯 작업했다는 해석도 일리가 있습니다. 주문은 밀려오는데 화가들은 흑사병으로 많이 사망했으니 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후원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그림 속에 직접 넣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스트로치 제단화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로 묘사된 인물은 실제로는 작품을 주문한 토마스 스트로치의 얼굴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모습을 성인과 동일시하며 영생을 바랐던 것이죠. 이는 현대로 치면 일종의 '인증샷' 문화와 비슷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죽음에 대한 집착이 인간 중심적 사고를 촉발했습니다. 사람들은 신의 구원만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이것이 르네상스(Renaissance)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르네상스란 '재탄생'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재발견하며 인간성을 회복하려 한 14~16세기 유럽의 문화운동을 말합니다. 흑사병이라는 대재앙이 오히려 인류 문화사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스페인독감과 예술가들의 운명

1918년 스페인독감은 1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전쟁으로 1,500만 명이 사망했지만 독감으로는 5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출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한국에서도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팬데믹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도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제가 대학 시절 가장 좋아했던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독특한 불안감과 고독이 배어 있습니다. 가늘고 비틀린 인체, 강렬한 색채 대비는 표현주의(Expressionism) 특유의 내면 감정 표출 방식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표현주의란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작가의 주관적 감정과 내면을 왜곡과 과장을 통해 드러내는 20세기 초 예술 사조입니다.

실레의 집안은 대대로 병마에 시달렸습니다. 아버지는 매독으로 광기를 보이다 50대에 사망했고, 어머니와 누이도 매독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실레는 성과 죽음에 대한 강박을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1918년, 28세의 실레는 마침내 큰 스튜디오를 얻고 임신한 아내 에디트와 행복한 미래를 꿈꿨습니다. 가족 초상화를 그리던 그때, 스페인독감 2차 유행이 피렌체를 덮쳤습니다.

1918년 10월 27일 밤 10시, 실레가 아내를 간호하며 쓴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다음날 에디트는 뱃속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고, 실레 자신도 3일 뒤 2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알았을 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재능이 절정에 이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 겁니다.

반면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는 같은 독감에 걸렸지만 살아남았습니다. 뭉크 역시 병과 죽음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습니다. 5세에 어머니를 결핵으로 잃었고, 14세에는 사랑하던 누이가 같은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남동생은 폐렴으로,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바로 이러한 실존적 공포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건 뭉크가 독감에 걸렸을 때와 회복했을 때 그린 자화상의 차이입니다. 병에 걸렸을 때는 눈코입이 거의 생략되고 색채가 탁하고 무력합니다. 반면 회복 후 자화상은 핏기가 돌고 눈빛이 살아 있으며 터치가 힘차게 살아납니다. 뭉크는 류머티즘, 신경쇠약, 알코올중독 등 평생 병을 달고 살았지만 80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예술이 그를 살린 겁니다. 제 생각엔 창작 활동 자체가 그에게는 일종의 치유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팬데믹이 예술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니, 죽음 앞에서 인간은 오히려 더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흑사병은 르네상스를, 스페인독감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낳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시대에는 어떤 예술적 변화가 일어날까요? 제가 확신하는 건,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이 시대의 불안과 고독을 작품으로 남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예술은 팬데믹을 이겨내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입니다. 다음에 미술관에 가신다면, 작품 속에 숨겨진 시대의 고통과 극복의 흔적을 찾아보시길 추천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MZydkheN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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